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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병의 대표 원인 ‘아프타성 구내염’은 단순히 입이 헐어서 생기는 게 아니다. 스트레스와 피로가 면역세포의 균형을 무너뜨려 구강 점막에 과도한 염증 반응을 일으키는 과학적 메커니즘을 설명한다.

중요한 시험 기간, 혹은 며칠 밤을 새워 프로젝트를 마친 다음 날 아침. 양치질을 하다가 입안이 따끔거려 거울을 보면 어김없이 혓바닥이나 볼 안쪽에 하얗게 헌 궤양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 또 입병 났네. 비타민이라도 먹어야 하나?"
우리는 흔히 이를 "몸에 열이 나서" 혹은 "비타민이 부족해서" 생기는 단순한 증상으로 여깁니다. 하지만 의학적으로 이 흔한 입병은 우리 몸의 면역 체계가 보내는 아주 강력하고 위험한 '경고 신호(Red Flag)'입니다.
오늘은 가장 흔한 입병인 '아프타성 구내염(Aphthous Stomatitis)'의 정체와, 스트레스가 어떻게 내 몸의 방어군을 적으로 돌변하게 만드는지 면역학적 관점에서 깊이 있게 파헤쳐 봅니다.
1. 입병의 정체: 세균 감염이 아니라 '내전(Civil War)'이다
먼저 오해부터 풀어야 합니다. 입안이 하얗게 파이는 이 증상은 외부에서 세균이 침투해 곪은 상처가 아닙니다. 이것은 내 몸을 지켜야 할 면역 세포들이 멀쩡한 구강 점막 세포를 적(Enemy)으로 착각하고 공격해서 생긴 자가면역성 상처입니다.
의학 용어로 이를 '재발성 아프타성 구내염(RAS)'이라고 합니다.
- 아프타(Aphtha): 그리스어로 '불을 지르다'라는 뜻입니다. 작열감과 통증이 불에 덴 것 같다는 의미입니다.
- 특징: 경계가 붉고 중앙이 하얗게 패인 궤양 형태로 나타나며, 전염성은 없지만 극심한 통증을 유발합니다.
즉, 입병은 세균과의 전쟁이 아니라, 내 몸속 면역계 내부에서 일어난 '내전(Civil War)'의 결과물입니다.
2. 범인은 T세포: 아군을 공격하는 저격수
그렇다면 왜 멀쩡한 내 입안을 공격하는 걸까요? 그 중심에는 면역의 사령관인 'T세포(T-lymphocyte)'가 있습니다.
정상적인 상태에서 T세포는 바이러스나 암세포 같은 외부 침입자를 찾아내 파괴합니다. 하지만 몸이 극도로 피곤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 T세포의 피아식별 능력에 오류가 발생합니다.
- 시스템 오류: 피로 누적으로 면역 시스템의 정교함이 떨어집니다.
- 오인 사격: T세포가 구강 점막의 상피세포를 이물질로 오인합니다.
- 공격 개시: T세포가 점막 세포를 파괴하고, 그 자리에 염증 물질인 '사이토카인(TNF-α, IL-6)'을 쏟아붓습니다.
이 과정에서 점막 조직이 녹아내리며(괴사) 하얗게 구멍이 뚫리는 궤양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3. 스트레스 호르몬의 나비효과: HPA 축과 코르티솔
"피곤하면 생긴다"는 말은 과학적으로 'HPA 축의 과부하'를 의미합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우리 뇌의 시상하부(Hypothalamus) - 뇌하수체(Pituitary) - 부신(Adrenal)으로 이어지는 'HPA 축'이 활성화됩니다.
이때 부신에서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Cortisol)'이 과다 분비됩니다.
- 코르티솔의 역설: 적당한 코르티솔은 염증을 억제하지만, 만성적으로 농도가 높으면 오히려 면역 세포들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면역계를 교란시킵니다.
- 혈관 수축: 코르티솔은 말초 혈관을 수축시켜 구강 점막으로 가는 혈류량을 줄입니다. 영양 공급이 끊긴 점막은 방어력이 약해져 작은 자극에도 쉽게 헐게 됩니다.
4. 침(Saliva)의 감소: 무너진 방어막
피로가 입병을 유발하는 또 다른 이유는 '타액(침) 분비의 감소'입니다. 침 속에는 라이소자임, 락토페린 같은 천연 항생 물질과 점막을 코팅해 주는 보호 성분(뮤신)이 들어있습니다.
하지만 과로하거나 수면이 부족하면 교감신경이 항진되어 침샘이 말라버립니다.
보호막(침)이 사라진 구강 점막은 마치 갑옷을 벗고 전쟁터에 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치아에 살짝 씹히거나 거친 음식이 닿는 미세한 자극(Micro-trauma)에도 쉽게 상처가 나고, 그 상처 틈으로 면역 반응이 폭주하며 궤양으로 발전하는 것입니다.
※ 관련 상식: 침이 마르면 구내염뿐만 아니라 심각한 입 냄새를 유발하기도 합니다. 침과 구강 건강의 관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제 블로그의 [아침 입 냄새, 왜 밤사이 더 심해질까?] 글을 참고해 보세요.
5. 비타민 부족설의 진실 (선후 관계)
많은 분이 입병이 나면 종합 비타민부터 찾습니다. 이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입니다.
비타민 B12, 엽산, 철분, 아연이 부족하면 구강 점막의 재생 속도가 느려져 구내염이 잘 생기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악화 요인'이지 '직접적인 원인'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현대인에게 구내염은 영양 결핍보다는 '면역 과잉/교란'이 선행 원인입니다. 불난 집(면역 교란)을 끄지 않고 목재(비타민)만 공급한다고 해서 불이 꺼지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영양제 섭취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은 휴식입니다.
6. 치료와 예방: 스테로이드와 수면
아프타성 구내염은 세균 감염이 아니기 때문에 항생제는 효과가 없습니다. 치료의 핵심은 '미쳐 날뛰는 면역을 진정시키는 것'입니다.
- 치료: 오라메디나 페리덱스 같은 연고는 '스테로이드' 성분입니다. 이는 강력한 항염증 작용으로 T세포의 공격을 억제하여 궤양이 커지는 것을 막습니다. (알보칠은 화학적으로 조직을 지져서 탈락시키는 원리입니다.)
- 예방: 가장 강력한 예방약은 '7시간 이상의 숙면'입니다. 수면 중에는 멜라토닌이 분비되어 교란된 면역 시스템을 리셋하고 점막 세포를 재생시킵니다.
몸이 보내는 '강제 휴식 명령서'
입안에 돋은 하얀 궤양은 단순히 밥 먹을 때 아픈 성가신 존재가 아닙니다. 그것은 당신의 몸이 뇌에게 보내는 최후의 통첩입니다.
"주인님, 지금 면역 체계가 오작동할 만큼 위험한 상태입니다. 당장 모든 것을 멈추고 쉬세요."
오늘 거울 속에서 입병을 발견했다면, 비타민을 삼키기 전에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세요. "나, 지금 너무 무리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 작은 궤양은 당신에게 잠시 멈춤이 필요하다는 가장 확실하고 아픈 증거니까요.
[유의사항] 본 블로그의 내용은 일반적인 의학 상식 및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전문적인 의학적 진단을 대체할 수 없습니다. 입병이 2주 이상 낫지 않거나, 같은 자리에 반복적으로 생기거나, 출혈이 동반된다면 베체트병이나 구강암 등의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비인후과 전문의의 진료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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