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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급하게 방문을 나서다가 문틀에 팔꿈치를 '쾅' 하고 세게 찧었습니다. 순간 눈앞이 번쩍하면서 "악!" 소리도 안 나올 만큼 숨이 턱 막히더라고요.

더 신기한 건 그다음이었습니다. 분명 팔꿈치를 부딪쳤는데, 찌릿한 전기 충격이 팔을 타고 내려와 새끼손가락 끝까지 저릿저릿하게 마비되는 그 느낌, 다들 한 번쯤 겪어보셨죠?
친구들은 "거기 뼈 맞아서 그래"라고 하던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상하더군요. 뼈를 맞았는데 왜 손가락에 전기가 통할까요? 너무 억울하고(?) 아파서 직접 해부학 책을 펼쳐봤습니다. 알고 보니 우리가 맞은 건 뼈가 아니라 '신경'이었는데요. 오늘은 웃을 수 없는 고통, '퍼니 본(Funny Bone)'의 정체를 정리해 드립니다.
1. 퍼니 본의 정체: 뼈가 아니라 '신경'이다
먼저 오해부터 풀어야 합니다. 우리가 부딪혀서 아픈 그곳은 뼈(Bone)가 아닙니다. 정확히는 팔꿈치 뼈 뒤에 숨어있는 '척골신경(Ulnar Nerve)'이라는 굵은 신경 다발입니다.
척골신경은 겨드랑이에서 시작해 팔 안쪽을 타고 내려와 새끼손가락까지 이어지는 긴 신경입니다. 이 신경은 대부분 근육이나 지방 깊숙이 숨겨져 보호받지만, 딱 한 군데, 팔꿈치 뒤쪽에서만 유독 피부 바로 밑을 지나갑니다. 이 부위를 만져보면 뼈와 뼈 사이에 움푹 들어간 홈이 있는데, 이를 '주관(Cubital Tunnel)'이라고 합니다. 이곳에는 신경을 보호해 줄 근육이나 지방이 거의 없어, 외부 충격이 가해지면 신경이 뼈와 바닥(책상 등) 사이에서 샌드위치처럼 직접 압박을 받게 됩니다.
2. 왜 손가락까지 저릿할까? : 신경의 주행 경로
팔꿈치를 맞았는데 왜 아픔은 새끼손가락에서 느껴질까요? 이는 척골신경이 담당하는 '관할 구역' 때문입니다.
척골신경은 다음과 같은 부위의 감각과 운동을 책임집니다.
- 새끼손가락 전체
- 약지(네 번째 손가락)의 바깥쪽 절반
- 손바닥의 소지구(새끼손가락 쪽 두툼한 살)
신경은 전선과 같습니다. 전선의 중간(팔꿈치)을 밟으면, 그 전선이 연결된 끝부분(손가락)에 불이 들어오는 원리입니다. 뇌는 팔꿈치에서 발생한 충격 신호를 "신경 끝부분(손가락)에서 자극이 왔다"고 해석합니다. 이를 의학적으로 '방사통(Radiating Pain)'이라고 하며, 디스크가 터졌을 때 다리가 저린 것과 똑같은 원리입니다.
3. 이름의 유래: 왜 '웃긴 뼈(Funny Bone)'일까?
이 현상을 왜 'Funny Bone'이라고 부를까요? 여기에는 두 가지 재미있는 설이 있습니다.
- 기분 탓: 찌릿한 느낌이 너무 기묘하고 어이가 없어서(Funny), 혹은 맞았을 때 간지러운 듯 웃음이 나오는 느낌이라서 붙여졌다는 설.
- 해부학적 말장난: 팔꿈치 위쪽 뼈인 상완골의 의학적 명칭은 'Humerus'입니다. 이 단어의 발음이 '유머러스(Humorous, 웃기는)'와 비슷해서 생긴 의학계의 아재 개그(?)라는 설이 유력합니다.
4. 위험한 신호: 일시적 충격 vs 주관증후군
대부분의 퍼니 본 현상은 수분 내에 사라지는 일시적인 신경 마비입니다. 팔을 털거나 주무르면 금방 회복됩니다. 하지만 만약 부딪히지 않았는데도 다음과 같은 증상이 지속된다면 주의가 필요합니다.
- 증상: 새끼손가락과 약지가 계속 저리거나, 손아귀 힘이 약해져 물건을 자주 놓칠 때.
- 질환: 이를 '주관증후군(Cubital Tunnel Syndrome)' 또는 '팔꿈치 터널 증후군'이라고 합니다.
- 원인: 턱을 괴거나 팔베개를 하고 자는 습관, 혹은 스마트폰을 하느라 팔꿈치를 장시간 굽히고 있을 때 척골신경이 만성적으로 눌려서 발생합니다.
이 경우 방치하면 손가락 근육이 위축되어 손이 갈퀴 모양으로 굽어지는 '갈퀴손 변형(Claw Hand)'이 올 수 있으므로 정형외과 진료가 필수적입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글: 팔꿈치 신경이 눌려서 손이 저린 것처럼, 자다가 다리가 저리거나 쥐가 나는 것도 신경과 혈류의 문제입니다. 찌릿한 통증의 또 다른 원인이 궁금하다면 [자다가 다리에 쥐가 나거나 저려서 깨는 이유: 야간 다리 경련] 글을 참고해 보세요.
5. 생활 속 예방법: 신경을 위한 쿠션
척골신경은 우리 몸에서 가장 '노출된' 신경입니다. 보호막이 없는 이 신경을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가 대신 쿠션 역할을 해줘야 합니다.
- 팔꿈치 대지 않기: 딱딱한 책상에 팔꿈치를 대고 턱을 괴는 습관은 신경을 짓누르는 가장 안 좋은 자세입니다.
- 팔 펴주기: 잘 때 팔을 베고 자거나 구부리고 자지 말고, 최대한 펴고 자는 것이 신경 압박을 줄이는 길입니다.
- 쿠션 활용: 업무상 팔꿈치를 대야 한다면 푹신한 패드나 쿠션을 받쳐주세요.
우리 몸의 전기 스위치
팔꿈치를 찧었을 때 느끼는 그 짜릿한 고통은, 우리 몸속에 흐르는 생체 전기의 존재를 확인시켜 주는 가장 확실한 순간입니다.
"악!" 소리와 함께 손가락이 찌릿하다면, 뼈가 부러진 게 아닐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것은 당신의 척골신경이 "나 여기 살아있어! 그리고 지금 뇌로 신호 아주 잘 보내고 있어!"라고 외치는 건강한 비명소리니까요. 잠시 팔을 털어주며 신경의 안부를 물어주는 여유를 가져보시길 바랍니다.
[유의사항] 본 블로그의 내용은 일반적인 의학 상식 및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전문적인 의학적 진단을 대체할 수 없습니다. 손가락 저림이 2주 이상 지속되거나 손 근육이 빠지는 느낌이 든다면 신경 손상의 가능성이 있으므로 전문의의 진료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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