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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일부 사람들은 특정 소리(ASMR)에 소름이 돋을까? 청각 자극과 뇌의 보상 회로

📑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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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튜브에서 누군가 귓가에 대고 속삭이거나,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을 때 뒷목부터 척추를 타고 내려오는 찌릿한 전율을 느껴본 적이 있으신가요? 마치 뇌가 마사지를 받는 듯한 이 기분 좋은 소름을 우리는 ASMR(자율 감각 쾌락 반응)이라고 부릅니다.

    왜 일부 사람들은 특정 소리(ASMR)에 소름이 돋을까? 청각 자극과 뇌의 보상 회로
    왜 일부 사람들은 특정 소리(ASMR)에 소름이 돋을까? 청각 자극과 뇌의 보상 회로

     

    하지만 흥미롭게도 모든 사람이 이 반응을 느끼는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에게는 '극락'인 이 소리가, 누군가에게는 그저 듣기 싫은 소음일 뿐입니다. 도대체 우리 뇌 속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기에 소리가 촉각으로 변하는 걸까요? 오늘은 ASMR의 신경학적 비밀을 파헤쳐 봅니다.


    1. ASMR의 정의: 뇌가 느끼는 기분 좋은 간지럼

    ASMR(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은 직역하면 '자율 감각 쾌락 반응'입니다. 의학적인 공식 명칭은 아니지만, 신경과학계에서는 이를 시각, 청각, 촉각적 자극에 반응하여 머리 뒷부분이나 척추, 어깨 등에서 느껴지는 '저강도의 유포리아(Euphoria, 행복감)' 또는 '브레인 팅글(Brain Tingle, 뇌의 떨림)' 현상으로 정의합니다.

    주로 다음과 같은 트리거(Trigger)에 의해 발동됩니다.

    • 청각: 속삭이는 소리, 빗소리, 연필 사각거리는 소리, 입 쩝쩝거리는 소리
    • 시각: 누군가 손을 천천히 움직이는 모습, 붓으로 화면을 쓸어내리는 모습
    • 촉각(상상): 미용실에서 머리를 빗겨주거나 귀를 파주는 상황극

    2. 소리가 촉각이 되는 마법: 공감각(Synesthesia)

    ASMR을 느끼는 사람들의 뇌는 일반인과 조금 다르게 연결되어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이를 '공감각(Synesthesia)'의 일종으로 봅니다.

    공감각이란 하나의 감각이 다른 감각을 동시에 유발하는 현상입니다. 예를 들어 소리에서 색깔을 보거나, 글자에서 맛을 느끼는 식이죠. ASMR 경험자는 '청각 정보'를 '촉각 정보'로 변환하는 신경 회로가 활성화되어 있습니다. 귀로 들어온 '바스락' 소리가 뇌의 처리 과정을 거치며 뒷목을 간지럽히는 '물리적 감각'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3. 소름 돋는 이유: 뇌의 보상 회로와 프리슨(Frisson)

    ASMR을 느낄 때 우리 몸에 돋는 소름은 음악을 듣고 감동할 때 느끼는 전율인 '프리슨(Frisson)' 효과와 유사한 메커니즘을 공유합니다.

    이때 우리 뇌의 보상 회로(Reward Circuit)가 강력하게 작동합니다.

    1. 측좌핵(Nucleus Accumbens): 쾌락과 보상을 담당하는 부위로, 기분 좋은 소리를 들을 때 도파민을 분비하여 행복감을 줍니다.
    2. 전두엽(Frontal Lobe): 공감과 사회적 유대감을 담당하는 부위가 활성화됩니다.

    즉, ASMR을 들을 때 뇌는 마치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서 속삭여주거나 털을 골라주는(Grooming) 듯한 '사회적 안정감'을 느끼고, 이에 대한 보상으로 도파민과 옥시토신을 분비하며 기분 좋은 소름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 참고: 감동이나 추위를 느낄 때 피부에 소름이 돋고 털이 서는 구체적인 원리가 궁금하다면, [춥거나 무서울 때 소름이 돋는 이유: 입모근과 진화] 글을 참고해 보세요. 


    4. 진화론적 기원: 영장류의 '털 고르기' (Social Grooming)

    그렇다면 인간은 왜 이런 이상한 반응을 진화 과정에서 남겨두었을까요? 진화심리학자들은 ASMR을 영장류의 '털 고르기(Social Grooming)' 본능의 현대적 변형으로 해석합니다.

    원숭이나 침팬지는 서로의 털을 골라주며 기생충을 없애고 유대감을 형성합니다. 이때 털을 고르는 행위(Touch)와 가까운 거리에서의 숨소리, 입맛 다시는 소리는 뇌에게 "지금 너는 아주 안전하며, 보호받고 있다"는 강력한 신호를 줍니다. 현대인의 뇌가 ASMR 영상 속의 속삭임이나 사각거리는 소리를 이 '털 고르기 신호'로 착각하여, 신체적 접촉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옥시토신(애착 호르몬)을 분비하고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는 가설입니다. 즉, ASMR은 외로운 현대인의 뇌가 갈구하는 '가상적 친밀감의 시뮬레이션'인 셈입니다.


    5. 왜 나만 느낄까? : DMN 연결성의 차이

    가장 큰 의문은 "왜 내 친구는 아무 느낌이 없다고 할까?"입니다. 캐나다 위니펙 대학과 미국 다트머스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ASMR을 느끼는 사람들은 뇌의 '기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 DMN)' 연결성이 일반인보다 훨씬 낮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DMN은 멍하니 있을 때 활성화되는 뇌 영역인데, ASMR 경험자는 이 네트워크가 다른 시각/청각/감각 피질과 복잡하게 섞여 있어 외부 자극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성격적으로는 '경험에 대한 개방성(Openness-to-Experience)'이 높은 사람들이 ASMR을 더 잘 느낀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6. 반대 현상: 미소포니아(Misophonia)

    ASMR의 정반대편에는 특정 소리에 극심한 고통과 분노를 느끼는 '미소포니아(청각 과민증)'가 있습니다. 쩝쩝거리는 소리나 숨소리를 들으면 뇌의 편도체가 과민 반응하여 '혐오감'을 유발하는 현상입니다.

    흥미롭게도 ASMR을 잘 느끼는 사람이 미소포니아 성향도 함께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그들의 뇌가 '소리 자극' 자체에 매우 예민하게 세팅되어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결론: 뇌가 받는 디지털 마사지

    ASMR은 단순한 유행을 넘어, 현대인의 지친 뇌를 위로하는 디지털 진통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ASMR 영상 시청 후 심박수가 평균 3~5회 감소하고 스트레스 수치가 낮아지는 것이 입증되었습니다.

    오늘 밤 잠이 오지 않는다면, 이어폰을 끼고 뇌에게 부드러운 속삭임을 선물해 보는 건 어떨까요? 당신의 뇌세포들이 기분 좋은 춤을 추며 단잠으로 안내할지도 모릅니다.


    [유의사항] 본 블로그의 내용은 일반적인 과학 상식 및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전문적인 의학적 진단을 대체할 수 없습니다. 수면 장애나 청각 과민증이 심각할 경우 전문의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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